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쪼바의 식탁03․<문턱 없는 밥집>
땅 기운 서린 비빔밥을 먹고 형편껏 밥값을 내다 
 
<문턱 없는 밥집>은 보리출판사를 설립한 윤구병 선생에 의해 독일의 ‘경계 없는 식당’을 모델로 하여 만들어졌다. <문턱 없는 밥집>은 변산공동체와 함께 공생주의를 실천하고 있는데, 이 밥집은 단순한 웰빙 유기농 밥집이 아니다. 이 밥집은 음식을 먹는다는 인간의 행위, 그 이면에 자리 잡고 있는 사회적이고 생태학적인 다양한 층위들을 낱낱이 살피게 만드는 곳이다. 누가 이 음식을 먹고, 음식에 어떤 식재료가 쓰이며, 식재료가 어떤 방법으로 생산, 수송, 판매되는지, 음식들은 누가 어떻게 조리하는지 철저히 살피면서 밥을 짓는 공동체인 것이다. 이 공동체 안에는 늘 공생과 공존의 의미가 존립한다. 언젠가부터 우리 주변에 웰빙, 유기농, 친환경이라는 단어들이 난립하고, 백화점에 명품 유기농, 웰빙 코너가 배치되는 등, 유기농을 소비한다는 자체가 곧 권력이 되었다. 비싼 유기농 제품을 망설임 없이 살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새로운 소비권력이 된 것이다. 하지만 이 권력은 무릇 다른 권력이 그렇듯 짐짓 이기적이다. 안타깝게도 이미 지구는 몇몇 개인의 웰빙을 통해서는 절대 구원될 수 없을 만큼 처참한 상태다. 명철한 공생, 공존의식 없이는 대안을 만들 수 없다. 농약만 예를 들어도 농약의 0.3%만이 생산량 증가를 통한 수확을 위해 쓰여 지고 99.7%는 땅을 오염시키는데 사용된다. 다국적 기업들은 토종 종자와 세계 곡물시장을 장악하고 유전자조작 식품들을 아무런 죄책감 없이 생산한다. 우리들이 먹는 간장, 물엿들은 다 그런 것들로 만들어진 것이다. 먹거리는 생산지를 떠나 소비자에게 닿는 거리가 멀어질수록 필연적으로 질이 떨어지기 마련이다. 원거리를 경유하는 상품의 질과 신선도를 유지시키기 위해 농약, 방부제, 인공첨가물들이 필수적으로 사용할 수밖에 없다. 수많은 식품첨가물, 인공색소인 타르게 색소 등을 동원해 오렌지를 사용하지 않고도 오렌지주스의 맛을 정확하게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다. 적은 경비로 생산을 극대화 시키겠다는 인간의 욕망과, 좀더 싸게 많이 먹겠다는 욕심이 식품으로 간과할 수 없는 것들을 섭취하게 만든다. 그래서 유기농, 친환경을 찾아 헤매는 인간의 행태는 이제 건강이나 목숨과 직결된 이야기가 된다. 
 
<문턱 없는 밥집>에서 밥을 먹는다는 것은 사실 매우 불편하고 어렵다. ‘음식물을 절대 남기지 마라’, ‘발우 공양 하듯이 밥그릇을 싹싹 닦아 놓아라’ 등, 이곳에서 한 끼 먹을라치면 까다로운 주문이 많아 괜스레 번거롭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중세에는 폭식, 식탐을 인간의 죄악 중 일곱 번째 죄악이라 여겨 중세수도원에서는 식사시간에 음식 맛을 느끼지 못하도록 수도사들에게 기도문을 외우며 밥을 먹으라고 했다던데 <문턱 없는 밥집>에서 밥을 먹을 때에도 중세수도원의 식사시간과도 같은 긴장감이 살짝 돈다. 이곳에서 밥을 먹을 땐 음식에 대한 분방한 탐닉보다는 공생과 공존이 우선 시 되기 때문이다. 사실 공생과 공존에 대한 이해와 실천 없이는 개인의 자유도 보장 받기 어렵다는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문턱 없는 밥집>의 홈페이지나 전단지에 적혀 있는 단어들만 봐도 이들이 공생과 공존을 위해 안과 밖으로 철저히 또한 다양하게 의식과 실천 운동을 펼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밥상공동체, 도농연대, 빈그릇운동, 도시빈민, 가난한 유기농가의 판로, 도시 서민들이 쉽게 이용할 수 있는 로컬푸드, 슬로우푸드, 슬로우머니, 형편껏 돈내기.’ <문턱 없는 밥집>에서는 유기농마크만 찍혀 있다고 그 재료를 무조건 사용하지 않는다. 이것이 땅을 살리는 재료인지 철저히 점검하고 사용한다. 주로 변산공동체의 생산물들을 사용하고 정농회를 비롯한 생협들에서 구매한 것들을 함께 사용한다. 잎채소의 경우는 서울과 가까운 팔당생명살림것을 사용한다. 택배 또한 중앙 집중 유통시스템이라 에너지 손실이 크다 여겨 가능하면 피하고 직접 배송을 받아 사용한다. 
 
<문턱 없는 밥집>의 점심은 유기농 비빔밥이다. (동절기 수요일은 국밥) 밥값은 먹는 사람 형편껏 낸다. 밥은 본인이 먹을 수 있는 만큼만 덜어서 먹고, 음식물을 남기면 안 되는 정도가 아니라 국그릇, 밥그릇을 남은 반찬으로 싹싹 닦아 깨끗이 만들어 놓아야 한다. <문턱 없는 밥집>이 얼마나 음식쓰레기를 철저히 발생시키지 않냐면 모든 식재료는 껍질 채 조리하고, 채소를 다듬다 남는 꽁다리 부분은 전부 모아서 강된장 재료로 쓰기도 하며, 어떤 날은 이것으로 꽁다리 전을 부쳐주기도 한다. 이곳에서 쓰는 모든 식자재는 땅의 기운을 살리는 유기농 재료이기 때문에 <문턱 없는 밥집 >의 비빔밥 원가는 거의 4,500원에서 5,000원을 육박한다. 물론 이것은 순수한 식자재 가격이고 인건비나 관리비가 여기에 포함되지 않는다. 만약 이것을 포함한다면 비빔밥의 원가는 거의 7,000원 정도가 될 것이다. 사람들이 밥을 먹고 형편껏 내는 밥값의 평균금액은 첫해에 1900원, 이듬해에 2,100원, 2011년에는 2,780원이었다고 한다. 당연히   적자다. 점심의 이 터무니없는 적자를 저녁 차림상 등을 통해서 메우려 하지만 그래도 1년에 3~4천만 원의 적자가 발생한다. 현재까지는 이 적자를 (재)한국민족의학연구원에서 채워 넣고 있지만 앞으로는 그것도 불투명할 것 같다고 한다. <문턱 없는 밥집>이 세상의 한 모퉁이에서 동서남북으로 번져 나가 많은 사람들에게 이로운 밥집이 되려면 어떤 방법들이 모색돼야 할까? 함께 고민해보자. 미루지 말고.

월간 페이퍼 2012.03

 

쪼바의 식탁03․<문턱 없는 밥집>

땅 기운 서린 비빔밥을 먹고 형편껏 밥값을 내다

 

<문턱 없는 밥집>은 보리출판사를 설립한 윤구병 선생에 의해 독일의 ‘경계 없는 식당’을 모델로 하여 만들어졌다. <문턱 없는 밥집>은 변산공동체와 함께 공생주의를 실천하고 있는데, 이 밥집은 단순한 웰빙 유기농 밥집이 아니다. 이 밥집은 음식을 먹는다는 인간의 행위, 그 이면에 자리 잡고 있는 사회적이고 생태학적인 다양한 층위들을 낱낱이 살피게 만드는 곳이다. 누가 이 음식을 먹고, 음식에 어떤 식재료가 쓰이며, 식재료가 어떤 방법으로 생산, 수송, 판매되는지, 음식들은 누가 어떻게 조리하는지 철저히 살피면서 밥을 짓는 공동체인 것이다. 이 공동체 안에는 늘 공생과 공존의 의미가 존립한다. 언젠가부터 우리 주변에 웰빙, 유기농, 친환경이라는 단어들이 난립하고, 백화점에 명품 유기농, 웰빙 코너가 배치되는 등, 유기농을 소비한다는 자체가 곧 권력이 되었다. 비싼 유기농 제품을 망설임 없이 살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새로운 소비권력이 된 것이다. 하지만 이 권력은 무릇 다른 권력이 그렇듯 짐짓 이기적이다. 안타깝게도 이미 지구는 몇몇 개인의 웰빙을 통해서는 절대 구원될 수 없을 만큼 처참한 상태다. 명철한 공생, 공존의식 없이는 대안을 만들 수 없다. 농약만 예를 들어도 농약의 0.3%만이 생산량 증가를 통한 수확을 위해 쓰여 지고 99.7%는 땅을 오염시키는데 사용된다. 다국적 기업들은 토종 종자와 세계 곡물시장을 장악하고 유전자조작 식품들을 아무런 죄책감 없이 생산한다. 우리들이 먹는 간장, 물엿들은 다 그런 것들로 만들어진 것이다. 먹거리는 생산지를 떠나 소비자에게 닿는 거리가 멀어질수록 필연적으로 질이 떨어지기 마련이다. 원거리를 경유하는 상품의 질과 신선도를 유지시키기 위해 농약, 방부제, 인공첨가물들이 필수적으로 사용할 수밖에 없다. 수많은 식품첨가물, 인공색소인 타르게 색소 등을 동원해 오렌지를 사용하지 않고도 오렌지주스의 맛을 정확하게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다. 적은 경비로 생산을 극대화 시키겠다는 인간의 욕망과, 좀더 싸게 많이 먹겠다는 욕심이 식품으로 간과할 수 없는 것들을 섭취하게 만든다. 그래서 유기농, 친환경을 찾아 헤매는 인간의 행태는 이제 건강이나 목숨과 직결된 이야기가 된다.

 

<문턱 없는 밥집>에서 밥을 먹는다는 것은 사실 매우 불편하고 어렵다. ‘음식물을 절대 남기지 마라’, ‘발우 공양 하듯이 밥그릇을 싹싹 닦아 놓아라’ 등, 이곳에서 한 끼 먹을라치면 까다로운 주문이 많아 괜스레 번거롭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중세에는 폭식, 식탐을 인간의 죄악 중 일곱 번째 죄악이라 여겨 중세수도원에서는 식사시간에 음식 맛을 느끼지 못하도록 수도사들에게 기도문을 외우며 밥을 먹으라고 했다던데 <문턱 없는 밥집>에서 밥을 먹을 때에도 중세수도원의 식사시간과도 같은 긴장감이 살짝 돈다. 이곳에서 밥을 먹을 땐 음식에 대한 분방한 탐닉보다는 공생과 공존이 우선 시 되기 때문이다. 사실 공생과 공존에 대한 이해와 실천 없이는 개인의 자유도 보장 받기 어렵다는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문턱 없는 밥집>의 홈페이지나 전단지에 적혀 있는 단어들만 봐도 이들이 공생과 공존을 위해 안과 밖으로 철저히 또한 다양하게 의식과 실천 운동을 펼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밥상공동체, 도농연대, 빈그릇운동, 도시빈민, 가난한 유기농가의 판로, 도시 서민들이 쉽게 이용할 수 있는 로컬푸드, 슬로우푸드, 슬로우머니, 형편껏 돈내기. <문턱 없는 밥집>에서는 유기농마크만 찍혀 있다고 그 재료를 무조건 사용하지 않는다. 이것이 땅을 살리는 재료인지 철저히 점검하고 사용한다. 주로 변산공동체의 생산물들을 사용하고 정농회를 비롯한 생협들에서 구매한 것들을 함께 사용한다. 잎채소의 경우는 서울과 가까운 팔당생명살림것을 사용한다. 택배 또한 중앙 집중 유통시스템이라 에너지 손실이 크다 여겨 가능하면 피하고 직접 배송을 받아 사용한다.

 

<문턱 없는 밥집>의 점심은 유기농 비빔밥이다. (동절기 수요일은 국밥) 밥값은 먹는 사람 형편껏 낸다. 밥은 본인이 먹을 수 있는 만큼만 덜어서 먹고, 음식물을 남기면 안 되는 정도가 아니라 국그릇, 밥그릇을 남은 반찬으로 싹싹 닦아 깨끗이 만들어 놓아야 한다. <문턱 없는 밥집>이 얼마나 음식쓰레기를 철저히 발생시키지 않냐면 모든 식재료는 껍질 채 조리하고, 채소를 다듬다 남는 꽁다리 부분은 전부 모아서 강된장 재료로 쓰기도 하며, 어떤 날은 이것으로 꽁다리 전을 부쳐주기도 한다. 이곳에서 쓰는 모든 식자재는 땅의 기운을 살리는 유기농 재료이기 때문에 <문턱 없는 밥집 >의 비빔밥 원가는 거의 4,500원에서 5,000원을 육박한다. 물론 이것은 순수한 식자재 가격이고 인건비나 관리비가 여기에 포함되지 않는다. 만약 이것을 포함한다면 비빔밥의 원가는 거의 7,000원 정도가 될 것이다. 사람들이 밥을 먹고 형편껏 내는 밥값의 평균금액은 첫해에 1900, 이듬해에 2,100, 2011년에는 2,780원이었다고 한다. 당연히   적자다. 점심의 이 터무니없는 적자를 저녁 차림상 등을 통해서 메우려 하지만 그래도 1년에 3~4천만 원의 적자가 발생한다. 현재까지는 이 적자를 ()한국민족의학연구원에서 채워 넣고 있지만 앞으로는 그것도 불투명할 것 같다고 한다. <문턱 없는 밥집>이 세상의 한 모퉁이에서 동서남북으로 번져 나가 많은 사람들에게 이로운 밥집이 되려면 어떤 방법들이 모색돼야 할까? 함께 고민해보자. 미루지 말고.


월간 페이퍼 2012.03


 

닳고 닳은 어른들이 제멋대로 날뛰어 세상이 더 혼란해지고, 좀더 붕괴되기전에 우리는 재빨리 대안을 찾아 떠나야 한다. 그것은 현실에 더 단련되기 전에 그냥 도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훌쩍 떠나는 것과는 매우 다르다. 무슨일을 저지를지 모르는 자신을 찾아 떠나는 것은 즐거운 일이고. 그런 새로움을 만나는 일은  빛나는 순간들 일것이다. 제주도 산방산 배경의 한작가의 작업장 벽 전면에 마루야마 겐지의 &#8220;소설가의 각오&#8221;가 적혀있다. 30년동안 크게 인구변동이 없던 제주에 작년한해 대락 5만명의 젊은 사람들이 이주해왔고. 이들 젊은 이주자들 중 문화예술관계자들이 많다한다.현실적 대안을 가지지않는 강함 이외의 모든 것은 임기웅변이고 거짓이며 착각이고 도피가 아니겠는가라는것은  충분히 맞는 말이지만 너무 비장하고 절박하지만 않게 시작되는 그들의 즐거운 각오, 자유, 투지들에 경의를 표한다. 

닳고 닳은 어른들이 제멋대로 날뛰어 세상이 더 혼란해지고, 좀더 붕괴되기전에 우리는 재빨리 대안을 찾아 떠나야 한다. 그것은 현실에 더 단련되기 전에 그냥 도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훌쩍 떠나는 것과는 매우 다르다. 무슨일을 저지를지 모르는 자신을 찾아 떠나는 것은 즐거운 일이고. 그런 새로움을 만나는 일은  빛나는 순간들 일것이다. 제주도 산방산 배경의 한작가의 작업장 벽 전면에 마루야마 겐지의 “소설가의 각오”가 적혀있다. 30년동안 크게 인구변동이 없던 제주에 작년한해 대락 5만명의 젊은 사람들이 이주해왔고. 이들 젊은 이주자들 중 문화예술관계자들이 많다한다.현실적 대안을 가지지않는 강함 이외의 모든 것은 임기웅변이고 거짓이며 착각이고 도피가 아니겠는가라는것은  충분히 맞는 말이지만 너무 비장하고 절박하지만 않게 시작되는 그들의 즐거운 각오, 자유, 투지들에 경의를 표한다. 

Mon petit coin de bureau&#8230;.

Mon petit coin de bureau….

album art
[Flash 9 is required to listen to audio.]

16 Tracks

— Yeonsu Kim

(Source: yeonsukim)

쪼바의 식탁02

  

요란하고 강렬한 불량(?)한 청춘을 겪은 인생들이 더 끈끈하고 창의적이고 혁신적으로 진화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을 자주 본다. 내 친구 깜상(반토막이라고도 불렸던)  원체 학교에서 사고를 많이쳐서 담임선생이 가정방문을 오자 언덕에서 돌을 던져 끝내 담임선생님을  자기집에 못오게한 망썽꾼에 불량학생이었는데. 남들이 다 망한다는 분야에서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내서 모 대기업에서 연봉 5억을 받고 있다. 그의 짱똘정신으로의 승리이다. 저항없이 자신을 사회에 순순히 순응시키는 모범생들이 만들어내는 사회는 상상만 해도 숨막힌다. 잡음이 제거되고 모든것이 표준화된 불량없는 클린한  사회는 천국같이 평온할듯 하나. 인생의 중요한 부분을 너무도 많이 놓치기에 경직화되고 획일화된 전체주의적 사회로 밖에 후퇴 될수밖에 없다. 그리고 어차피 정당하고 옳기만한 사람과 사회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기에 매우 불량한 식품으로 구분되는 떡볶이에 대해서 쪼바의 식탁에서 이야기 한다는것은 “ 년간 5조달러의 세계음식시장에서 한국음식, 떡볶이를 <세계 5대 음식>으로 만들기위해 우리 함께 “ 달려가욧~ 하고 외친다거나, 년간 12억원예산의 떡볶이연구소를 만들어  한국적 매운맛을 단계별로 표준화하고 떡의 식감을 데이타화하여 세계인이 좋아할만한 끈적거리지않는 떡의 세계화표준된 조직감을 만들어보자는 것들과는 전혀 무관하다.

 

아무리 우리들의 음식이 개별적이기 이전에 보편적인 것이어서 표준화 될수다고 해도. 자기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음식은 각자의 배고픔만을 채울수밖에 없고. 시각은 이성과 통하고, 청각은 아득히 먼 잃어버린 낙원과 영원과 통한다는 어떤 후배의 말처럼, 우리들의 감각, 특히 미각은 절대 화학적 표준으로 통일화 될수없는 복잡하고 다양한 층위를 가지고 있다. 똑같은 고추가루, 고추장, 조리도구를 사용하며 지구상 어디를 가더라도 내가 먹었던 떡볶이를 먹을 수있다. 어떻게 보면 굉장히 획기적이다. 여행다닐때 낮선 유럽의 어디에서라도 서울에서 먹던 맥도날드를 먹을 수있다는 것은 광화문 대형서점의 익명속에 묻혀 자신을 스스로 평안하게 만드는 것 처럼 안락함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그 표준화에서 빠져나가는 정겹고 우두두둘한 아날로그적인 세상의 다정함은 얼마나 많은가? 세상 0.1.0.1…으로 규정되는 그 틈새의 무수한 지터잡음과 같이 이루어진것이야 말로 우리들이 사는 천국에 가까운 세상이다. 그러기에 그렇게 비 위생적이고 불량하다 구분된 떡볶이가 아직도 서울 어느 여학교의 담을 넘어 검정 비닐봉지안에 감추어져서  무슨 엄청난 암거래물건인양 거래가 되고 있는 것이다.

 

강남 잠원역 3번출구 근방에 있는 잠원떡볶이를 찾아가면 순간적으로 잉~ 이란 소리가 머리속에 맴돈다. 잠원동의 아파트성곽들 사이에 사라지지않는 섬처럼 자리를 지키고 있는 “잠원떡볶이”는 개발엔 항상 그늘이있고 개발에는 결코 포함되지 않는 어떤것이 있다라는 사실을 증명하듯 그에 있다. 70년대 초반까지 압구정동에 배밭이 있었다는 상상할수없는 썰같은 소리가 실감이 될 정도이다. 잠원떡볶이 할머님은 근방에서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며 30년가량을 떡볶이 집을 했다. 주인장 할머님은 영원히 임시일듯 한 가설건물에 너무도 당당하고 굳건한 모습으로 앉아계신다. 그러면서도 너무도 편안하고 부드러우시다. 이게 무슨 말인지는 가서 만나보면 바로 알게된다. 잠원떡볶이의 떡볶이 한접시를 받아들면 또 잉~ 이란 소리가 이번엔 입속에 맴돈다. 별로 맛이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새빨갛고 윤기가 자르르 흐르면서 깨끗하게 셋팅되어 나오는 프렌차이즈 떡볶이들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기 때문이다요즘 프렌차이즈음식들을 보면 얼마나 더 맵고 달콤하고 자극적인가를 경쟁하는 듯 하다. 우리 입속을 거쳐 몸으로 들어가는 음식에서 조차 우리들의 동물적 경쟁생태계가 적용되는 것은 그리 유쾌한 일이 아니다. 우리가 맛이란것을 규정한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지만, 잠원떡볶이의 맛은 편하고 순한 맛이다. 우리들의 동물적 경쟁생태계를 비껴가는 맛인 것이다. 일부러 꾸미지않으니 색은 식욕을 자극하지않치만 마음을 움직인다. 김말이는 흔한 떡볶이 집에서 보는 것이 아니라 쪼끄만 꼬마김밥에 들어있는 것이다. 이 맛과 이집이 사라지지않아야 할 이유는 30년된 단골손님들이 만들어 준다. 이제는 심지어 손녀, 손자를 데리고 찾아오는 동네단골들이 대부분 이집의 손님들이다. 쪼바가 누누히 강조하든 “밥집”은 떠돌이들의 커뮤니티이다. 밥은 혼자 자신의 목구멍으로 넘어가지만 음식은 같은 식탁에 앉아 나누어 먹는 것이다. 그러니 밥집은 떠돌이들의 커뮤니티이자 우리들의 공존의 식탁이 있는 곳 이다. 인간들은 낮은 등급의 송아지를 낳은 암소 40만 마리를도태시켜 그들의 식욕을 위한 뛰어난 등급의 육질뛰어난 고기를 얻는다. 이건 우리가 공존의 지구별에서 인간들이 차려야 할 식탁이 아니다우리가 이제 지구별에 살아가면서 가장 크게 고민해야할 부분이 공존의 문제이다. 건물이 이제 형태를 논하는 일차원적인 미학에서 벗어나서 지구생태환경속에서 어떤 주거공간을 가지고 주변 자연환경, 주변 동네와 같이 살아가는것에 대한 진지한 논의를 시작해야 하듯이. 우리들의 식탁도 지구공존에 대한 생각을 해야한다.

 

현대도시 특히 한국의 도시들은 자신의 치부를 감추는데 뛰어나다 못해. 자신의 과거를 말끔이 지우는데 능하다. 만약 길거리 음식이 정말 위생적으로 문제가 있다면. 위생기준 적용하고 도시미화 해친다는 포장마차의 디자인도 개선해서 합법적으로 양성화 시키는게 마땅다. 이제껏 길거리에서 허기진 우리들을 위로해주던 수많은 길거리 노점, 포장마차들을 하루 아침에 도시환경미화 개선과 위생법적용하여 없애려 하는 것은 지구공존을 이야기하기전의 가까운 사람들과 공존해 나가는 아주 기초적인 문제이다.

 

세상의 선과 악은 간혼 혼돈되고 전도되어져 무엇이 옳은것인지 판단하기 힘든 숨막히는 사회를 만든다. 화장실에 앉았는데. 흔히들 지네로 잘못알고 있는 발많은 돈벌레 한마리가 발밑에서 달아난다. 잡으려다 놓쳐버렸다. 다행 이놈이 내손을 벗어난게 한켠에는 안도가 된다. 그래 니도 살아야지 우리 같이 살아야지 (무척 징그럽고 기겁할만한 놈이지만..), 무심히 만화 “심야식당” 8권을 펼쳤더니 다자이 오사무의 소설의 한대목이 인용되어있다. “ 가을까지 살아남아 있는 모기를 슬픈 모기라 한다. 모깃불은 피우지 않는 법. 불쌍하기 때문이지..” 가을모기가 우리와 같이 이 지구상에서 생존에 스스로 위협당하고 흔들리는 불쌍한 생명체임을  느끼는 순간. 공존의 동일시가 이루어 진다.

 

글을 쓰고 있는 카페의 큰창밖으로 하얗고 쓸쓸한 눈발이 가을모기 마냥 날린다. 사람들의 발걸음이 바쁘다. 이 지구에 혼자 살아가지 않는다는 부담감에 갑자기 마음이 아득하니 무겁게 한다. 물 무조건 공존하고 공동의 목적을 동일히 추구하게 강요하는 공동체는 위험하다. 공동의 목적을 너무 강조하게되면 우리들의 삶이 선정적이 되어 숨막히는 세상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같이 살아가며 엇갈려서 살육하는 것과 자기위치에서 자신의 자리만큼만 지키며 함께 잘 살아가는것은 매우 다르다. 우리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동일하지 않은 어떤것들을 바라보며 함께  살아간다. 절대 표준화할수없는 떡볶이의 맛처럼. 세상의 어디에 가든 똑같은 맛의 떡볶이를 먹는다는 것은 매우 편리할듯 하나 아주 정말 끔찍한 일이다. 세상의 어딘가에는 자신만의 맛으로 소박하지만 친근한 사람들과 떡볶이를 나눌수있는 그런 가게가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은 흐뭇한 일이다. 진짜 배가 고파졌다.

 

월간 페이퍼, 2012.02


쪼바의 식탁01

해넘어가기전에 보자던 농담시인 이문재 선생과 동국대 태극당앞에서 동네 모지란 형들처럼 손흔들고 만나 장충동 채식당, 적수방에서 콩고기햄에다 밥을 먹었다.다음날 아침에 적수방에서 사온연잎밥을 냉동시켜놨던것을 살살녹이고향이 좋은 대만 목책철관음을 끓여 아침을 먹었다.“냄비에 물을 붓고 10분간 끓여 먹으라는 스님의 지침을 철저히 지더니 창문에 동그란 모양의 김이 어느새 맺혔다연잎밥속에는 콩고기햄과 붉은콩, 불린 마른 표고버섯들이 적당히 간이밴 찰밥과 함께 부드러운 연잎 잘 쌓여있다

혀밑에 충실히 차오르는 밀도감 높은 찰밥의 고소한 온기와 철관음의 화려한 향은 무척 잘 어울렸다.

 

문득아름다운것과마주쳤을때 / 지금곁에있으면얼마나좋을까, 하고/ 떠오르는얼굴이있다면그대는 / 사랑하고있는것이다. / 그윽한풍경이나제대로맛을낸음식앞에서/ 아무도생각하지않는사람 / 그사람은정말강하거나 /아니면진짜외로운사람이다.– 이문재 (농담 중에서…) 나는 정말 강하거나 진짜 외로운 걸까? 맛난 음식앞에서는 앞에 앉아있는 사람조차 망각을 해버린다. 아마 스무명 정도 같이 밥을 먹다 다섯명 정도 죽어나가도 모를것이다.오래전이다.소년과같이밥을먹었다. 반찬은 적당히기름기가포르르 흐르는고등어의 살과양념이잘배어나입안에서 스르르부서지는잘익은무우가일품인고등어조림이었다. 너무맛나소년이먹지않고있다는것조차눈치채지 못했. 안먹어? / 그게.. / 왜에? / (여전히 나는 고등어조림을 먹느라 정신이 없) 고등어가깊은바다를헤엄칠때반짝이던비늘을 생각하면못먹겠어요. 사람이 심성이 고우면 상상력이 풍부해지나? 잠시 멍해졌다.  누구든 사람을 잘 챙기시던외할머니는동물이나 식물도  사람을 대하듯이함부로 대해서는 절대 안된다 하셨다. 정말 미친듯이 먹을수있는 행복감이란 것을 주는 식욕이란건 내게는 각별한것이라 세상에 몸에 안좋은 음식이란것은 하나도 없다고 나는 주장해왔다. 그러나우리들의 식욕을 위해 누군가의 행복권 아니 생존권이침해한다면생각이 좀 달라질수밖에 없다.

 

우리가 식탁에 앉아있는 이 순간, 지구상에대략 45000억마리의육상동물이 공장식축산으로 사육되고 있고,한발짝꼼짝못하는철제우리에서평생을 보내다 본수명의 1/30분의일도안되는 생을 마감하면서 고급마블링과풍성한 육즙,육질을인간에게 제공하기 위하여죽어가고있다.바다에서 인간은 2차대전이후발달한모든 첨단 전쟁기술(위성GPS)을동원해고기떼들을추적해서한해에 14억개의 낚시바늘로 이들을포획하고. 그 대부분은 우리들의 식탁에 올라온다. 우리들이 먹는 동물들의 99%가 그들의 몸에 깊은 고통과 악몽을 각인시키며 사육되거나 포획된다.영리하고 귀여운것이 애완동물의 기준이라면 돼지가 개보다 못할리가 없고. 매끈하고 아름다운것이라면 깊은 바다, 물고기의 유영만한것이 어디 있을까 싶다.장지글러 <왜세계의절반이꿂주리는가 >에 의하면 2005년기준구조적 기아에 허덕이는 사람이85천만명이라는 사실을 기억하고 상상하면서내가 푸짐한 식탁앞에 앉아있거나,  살뺀다고 몇만원짜리 헬스클럽 등록해놓고 몇일 가지못하는 짓을 되풀이 할수있을까 ? 우리는 다행히 망각하는 인간이고 부족한 상상력을 하늘에게서 덤으로 축복 받은것을 감사해야 한다.

 

장충동 적수방은 대만(타이완) 4대사찰중에 하나인 불광산사에서 운영하는 채식당이다. 불광산사는 대만에서 대통령이 되려면 그 절 주지에게 문안을 드려야 할 정도로 힘께나쓰는 절인데. 한국에서는  그 위세가 전혀 느껴지지않는 소박한 건물에 얌전히 포교당을 마려하고 그 지하에 적수방이라는 채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한국에 온지 3년됐다는 여자스님(비구니?)  프랑스영화 < 델리카테스튼의 사람들 >의사람고기파는 우락부락한 푸줏간 주인이 입던거같은 헐렁한 앞치마를 덜그럭거리며 주방과 식당을 오가며 서빙과 요리를 직접한다.

 

대만의 채식(菜食)은 한국의 채식당과는 매우 다르다.대만에서는채식(菜食)을 소식 (素食)이라 부르고. 야채로 육류의 질감과촉감, , 맛까지거의 똑같이 만들어낸다.그니깐 연어, , 소고기, 오리고기 등등 모든 육류가 야채로 모두 만들어져 있다면 쉽게 이해가 될것 이다.혹시 한때 기절초풍하게 했던 중국의 짝퉁달걀도 그런 개념아닐까? 이는 살생을 금지하는 중국 도교전통에 따른것인데 종교적으로 금지되는 육식을 하고싶은 사람들이 만들어낸 짝퉁고기 인것 이다. 마치 하마단 금식기간중에 해만 떨어지면 푸짐한 성찬을 먹는 이슬람권의 아이러니가 떠올라서 좀 고개를 갸웃거리게 되지만. 야채고기의 전통이 오래되어서 이제는그 자체를 하나의 음식재로로 인정을 해야한다. 적수방에서는 대만 채식의 전통에 따라오훈채로만 양념을 한다. 고추, 생강을제외한파,마늘, 앙파, 부추같은매운음식이를오훈채라하는데이것은기력을쇠잔케하고음욕과조급하고화내는마음을갖게한다하여 대만소식에서는 사용하지 않는다한다.

 

그런데 이 스님 아까부터 아주 슬로우라이프의 본보기를 보여주신다. 자기집 만두가 맛있다고 먹어보라 해서, 만두를 시켰더니 주방에 들어가서 만두를 만드느라 전화벨이 울려도 받지를 않는다. 집중과 선택이 뛰어난 무아지경의 경지다.그러고 보니 이집에서 가장 인상깊은것이 무아(無我)차 이다. 스님이 직접 가스불에 냄비를 얹고 주걱을 휘휘저으면서 만드는 무아차는 망고, 사과, 유자, 레몬, , 황도복숭아 등을 잘게 다져 설탕을 넣고 끓여낸다.  브로컬리 너마저가 노래로 끓이는 유자차와 매우 비슷한데 그보다는 달고 자극적이지 않고 은근한 풍미가 있다. 스님이 땅콩맛나는 카스테라와 함께 내주신다. 무아차를 마시고 무아지경까지는 가지  못했지만 따스한 온기가 온몸에 퍼진다.

 

음식은 우리에게 영양을 공급하고 맛을 제공하는 것 이외에도 우리몸에 기억을 남긴다. 음식은 기억을 담는 그릇이다. 나에게 해물잡탕은집나가 돌아다니는던 나를 붙들던 막내삼촌과 회기동 기사식당이고 하라주큐 만두는 절대깨서는안될것같던행복한꿈. 돼지두루치기는 제주 표선 가시마을 그 어둑한 시골밤, 민물참게매운탕은 논산 탐정호수의 붉은노을이다.

 

세상엔 수천가지의 음식이 있고 x 1000이상으로 음식에 대한 기억들이 있을 것이다. 그 수천가지의 음식들이 모두 어디서 오는가를 고민하면서 먹는 것은 우리에겐 불가능 한 일이고. 나 또한 인류의 가장 오래되고 다양한 방법의 조리법을 가진 육식을 포기하고 내 일생을 풀이나 뜯어먹으며  비계의 고소하고 농밀한 맛을 저버리는것은 불가능할성 싶다. 그렇치만 지금 이순간에도 불길하게도 지구의 오존층 구멍은 조금씩 커지고 있고 지구는 점점 뜨거워지고 있고. 공장식 축산업은 지구기후변화의 가장 큰 원인이며  우리들의 식욕, 음식행복 추구권은 지극히 잔인하고 구조적인 폭력을 근간으로 한다는 것에 대한 생각은 가져야 할것 이다.

 

고등학교때 외할머니는 밥맛이 없으시면 내가 학교에서 돌아오기를 기다리시다. 배고파서 땀을 뻘뻘흘리며 밥을 퍼먹는 나를 보시고~ 이제 배고프다 하시면서 나와 함께 밥상을 끌어당겨 식사를 하시곤 했다그렇게 밥 한그릇을 사이에 두고 우리는 평생 지워질수없는 기억을 몸에 새겼다.  음식에 대한 기억은 몸에 기억된다. 우리들의 몸안에 동물들의 불행과 깊은 고통의 상처가 각인 되지는 않아야 할것 이다.

월간 페이퍼, 2012.01

 

ㅇffice conner red trash&#8230;

ㅇffice conner red trash…

Kathleen Ferrier sings "Silent Night, holy night"

Kathleen Ferrier “Silent Night, holy night”

내년이면 이분이 태어난지도 100년이 되네…캐서린 페리에 (Kathleen Ferrier), 그녀의 심연에서 올라오는듯한 묵직한 중저음은 일년에 한두번은 꼭 생각이 난다. 전화교환원이었던 시절 그녀의 음성은 전화기로 어떻게 울렸을까?   http://youtu.be/M1_4Hie—UM

Pra Niñar - Kathleen Battle & Parkening

Pra Niñar - Kathleen Battle , Paurillo Barroso, Christopher

http://youtu.be/tOp898ogfVs

liquidnight:

Mario Algaze
Encuentro
Cuzco, Perú, 2002
[via La Lettre de la Photographie and with thanks to billyjane]

liquidnight:

Mario Algaze

Encuentro

Cuzco, Perú, 2002

[via La Lettre de la Photographie and with thanks to billyjane]

2011년 12월 17일 오전 9시&#8230;.

2011년 12월 17일 오전 9시….

Songfair: 김일두 Suspens, <어쩔 수 없는 천재>

songfair:

지니어스는 천재다. 무슨 재미없는 동어반복이냐고 하겠지만, 지니어스는 천재, 맞다. 지니어스의 주축이 되는 김일두는 자칭 타칭 ‘부산 중구 천재’라는 타이틀로 거의 정색을 하며 스스로를 소개한다. 스스로를 그렇게 소개하면 듣는 이의 반응은 제각기다. 조심성이 많은 부류의 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지 몰라 웃어 넘기고, 간혹 대담한 사람들은 정말 그러하냐고, 믿을 수 없다며 반문하고, 대담한 부류의 사람보다 더 적은 소수의 사람들이 그러한 타이틀에 고개를 주억거리며 동의한다. 나는 당당히 말하건대, 세번째 부류의…
BOY + LONDON
By LOUIS PARK

루이스박 사진개인전, BOY+LONDON. open 12.06. 통의동보안여관

BOY + LONDON

By LOUIS PARK

루이스박 사진개인전, BOY+LONDON. open 12.06. 통의동보안여관


album 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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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rf Ich Bitten

— Balagan Band

grooviejazz:

‘Darf Ich Bitten’ by Balagan Band [Balagan, 2007]